2011/4/22(금)
경주 방월산성과 낭산  

한국 사람이라면 경주는 한 번이 아니라 수학여행, 신혼여행, 가족여행, 졸업여행 등으로 여러 번 가보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 경주를 찾는 것은, 이 작은 도시에 퍼내고 퍼내도 끝이 없는 역사의 샘이 있기 때문이다. 신라 천 년의 총체적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이 좁은 분지에 가득 차 있으니, 한두 번 가벼이 지나치는 나그네 발걸음으로 어떻게 그 깊은 혼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 역사상 문(文)과 무(武)가 조화되고, 문화적으로도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한 ‘한국의 로마시대’가 바로 여기 있었고, 노천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많은 유적과 유물이 당대의 번영을 전한다.

 

 

 

도시화도 막을 수 없는 경주의 향기

한반도와 만주 일원에서는 지난 4천여 년 간 고조선을 시작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명멸했으나 대부분 유적과 유물이 사라져 흔적을 찾기 어렵고, 도읍지는 황폐되어 옛날의 영화를 추측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남은 유적들도 도시의 소음과 인파에 그 독특한 향취가 묻혀 버렸다. 그나마 천 년간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가장 많은 유물과 유적을 후세에 전해 ‘한국의 로마시대’ 그 대단한 융성을 추억하게 해준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경주는 백만 인구의 세계적인 대도시였으나 지금은 27만으로 오히려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 같은 축소는 순기능도 있는데, 현대적 도시로도 역사의 현장을 뒤덮지 못해 경주 분지는 여전히 어떤 영기가 감도는 듯 천 년의 무게로 진중하다. 엄청난 크기의 고분들은 도시 가운데 있어도 빌딩들을 압도하면서 경주의 성격, 그 스러지지 않을 역사성을 드러내고 있다. 무려 천 년을 번영한 고대왕국의 그 진한 향취는 경주 분지 어디를 가도 눈과 가슴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경주가 풍기는 역사와 세월의 무게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봉황대. 주인을 알 수 없는 왕릉급 무덤으로 수백 년 묵은 고목들조차 한해살이 잡초처럼 느껴질 정도로 봉분만이 진중하다. 높이 22m, 지름 82m의 거대한 규모다.

 

 

허무의 공간, 황성옛터

이제 자전거로 경주를 다시 만난다. 걷는 것보다 더 빠르면서 힘이 들지 않고, 유리와 철판에 갇힌 자동차와 달리 전신을 공기 중에 드러낸 채 천천히 페달을 밟으면, 경주는 익숙하면서도 지금껏 보지 못한 생경한 표정으로 깊숙한 말을 걸어온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있게 된 그 원형을 우리는 이 분지에 남은 수많은 유물과 유적에서 만날 수 있다. 시내와 외곽 유적지를 잇는 자전거길이 잘 나 있으며, 중요한 유적지가 집중되어 있는 남산과 토함산도 자전거로 오를 수 있다. 수학여행으로, 또 다른 방식으로 아무리 경주를 많이 갔어도 자전거로 저 천 년 묵은 들과 산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아직 경주의 진짜 향기를 맡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반월성(또는 월성)으로 올라선다. 하늘에서 보면 지형이 반달을 닮아 반월성이라고 하는데, 자연 구릉지에 인공을 더해 사방을 성벽으로 에워쌌다. 단 한 채의 건물도 남지 않은 황성은 세월과 자연에 묻혀 간다. 반월성 안으로 들어서면 주위에 비해 다소 높은 대지가 건물은 단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황량하게 펼쳐진다. 일부는 잔디밭으로, 일부는 잡목이나 소나무 숲을 이뤘다. 겨울에 얼음을 넣어두었다가 여름에 사용했다는 얼음 냉장고인 석빙고도 반월성 한켠에 있다. 반월성 내부는 폭 2백 미터 내외, 길이는 8백 미터에 달하는 대규모여서 전각들이 가득 찼다면 대단한 장관을 이뤘을 것이다. 천년왕국을 통치했던 56명의 왕들과 비빈들 그리고 신하들의 희로애락이 바로 여기 반월성에서 점철되었으니, 흙 한 줌, 돌부리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신라를 이끈 사람들의 흔적

반월성 서쪽의 통로로 나가 고목들이 우거진 계림으로 들어가 보자. 안쪽에는 신라의 국가적 기틀을 다졌다는 내물왕의 능이 장중하게 앉아 있다. 내물왕릉 앞에서 왼쪽으로 숲을 벗어나면 경주 시내에서 가장 고즈넉하고 전통적인 느낌이 진한 교동 마을이다. 경주향교와 수백 년간 적선을 베풀어 지금도 칭송이 끊이지 않는 ‘경주 최 부잣집(경주 교동최씨 고택)’도 이 마을에 있다. 계림의 고목 숲을 지나 김유신 장군이 출동하던 그 길을 따라 그의 집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몇 년 만에 집을 지나건만 가족들 얼굴을 보기는커녕 우물물 한 그릇 시켜 마시고 “우리 집 물맛은 여전하구나” 하며 지났던 그 길이다. 이어서 안압지를 지나면 원효대사가 주석했던 분황사 옆으로 신라의 국력을 총 결집해서 이룩한 황룡사가 있던 절터가 장황하다. 한때는 서라벌 17만 가구 한가운데서 세상을 굽어보았던 9층탑은 빈 들판에 초석만을 남긴 채 처연하다. 황룡사를 돌아 나와 산 아래 홀로 선 진평왕릉을 찾아간다. 선덕여왕의 아버지이며 579년부터 632년까지 53년간 재위해서 박혁거세(73년간 재위) 다음으로 오래 왕위에 있었던 진평왕의 무덤은 아무런 장식도, 울타리도 없이 자연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진평왕릉을 거쳐 낭산을 오르면, 거기 산꼭대기에 선덕여왕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여왕은 영민하고 아름다웠지만 평생 고독과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일까, 무덤 주변의 소나무 숲은 다른 곳과 어딘가 다르다. 나무줄기는 특이하게 굴곡이 져서 마치 동화에 등장하는 마법의 숲처럼 느껴진다.

 

 

코스안내
1. 자전거로 떠나는 경주 여행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박물관에 볼거리가 많기도 하지만 무료 주차공간이 널찍하고 핵심 유적지가 밀집한 곳에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둘러본 다음 반월성과 낭산 주변을 둘러보고 되돌아오는 여정이다.

 

2. 박물관 바로 옆, 성긴 숲으로 뒤덮인 작은 언덕이 반월성이다. 울산에서 올라오는 7번 국도는 반월성 옆을 따라 경주시내로 이어지는데, 이 길을 잠시 따라가면 왼쪽에 반월성 진입로가 나온다.

 

3. 반월성을 보고 서쪽의 통로로 나오면 바로 옆에 계림과 첨성대가 보인다. 계림 안쪽에는 내물왕의 능이 있고, 내물왕릉 앞에서 왼쪽으로 숲을 벗어나면 교동 마을이다.

 

4. 반월성에 가까운 남천 변은 화려했던 다리인 월정교가 있던 자리로, 복원이 추진 중이다. 남천을 따라 마을길을 조금 내려가면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들의 담론장소였던 사마소(司馬所)가 나오고, 그 옆에 주춧돌만 남은 넓은 건물터와 낮은 담으로 둘러싸인 비석과 우물터가 있다. 이곳이 바로 김유신 장군의 집터로, 우물 이름을 따서 재매정이라고도 한다.

 

5. 재매정에서 되돌아와 교동 마을에서 첨성대와 안압지를 지나는 길은 작은 들판을 이루는데, 주위에 중요한 유적과 유물이 밀집해 있다. 안압지를 지나 임해로에서 좌회전해서 작은 들을 가로지르면 분황사 옆으로 황룡사터가 있다.

 

6. 황룡사터를 나와 분황사 앞길에서 우회전하면 경주IC나 포항 방면으로 경주시내를 우회하는 구황로와 만난다. 도로의 동쪽(왼쪽) 인도를 따라 500m 남하하면 들 가운데 길게 솟은 낭산(115m)에 못 미쳐 왼쪽 들판으로 뻗어나간 길이 나온다. 이 들길을 1km 정도 횡단하면 맞은편 명활산 아래 거대한 봉분 하나가 고목들에 에워싸여 있다. 바로 진평왕릉이다.

 

7. 진평왕릉에서 들길을 내려와 3층석탑이 덩그러니 남은 황복사터를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가면 곧 강선마을이다. 마을에서 문무왕 화장터인 능지탑 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왼쪽 능선 길로 간다. 이윽고 짙은 소나무 숲이 길을 뒤덮고, 산길은 싱글트랙으로 바뀐다. 잠시 산길을 올라 살짝 정상을 내려서면 선덕여왕릉이 보인다.

 

8. 선덕여왕릉에서 반대편 능선길을 내려와 동해 남부선 철길을 건너면 사천왕사터다. 절터 앞으로 7번 국도가 지난다. 여기서 우회전해 1.5km가면 출발지인 국립경주박물관이다.

 

진평왕릉에서 돌아 나와 낭산 자락을 따라 선덕여왕릉 가는 길은 한적하고 소담스러운 전원 풍경이다.

 

 

길안내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나와 서라벌대로를 따라 5km 직진하면 7번 국도와 만나는 배반사거리다. 여기서 좌회전해서 500m만 가면 국립경주박물관이 나온다. 넓은 무료주차장이 있다.

주변 관광지

 

주변 관광지

황룡사지
절터만 남았으나 신라의 3대 보물 중 하나였던 장륙존상이 서 있던 좌대와 80m 높이의 9층 목탑의 초석 등을 볼 수 있다. 동서 288m, 남북 281m의 정사각형 형태로, 복원한다면 그 규모에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절터지만 텅 빈 들판 가운데 스산할 뿐이다. ‘황성옛터’의 그 극적인 공허감을 맛보기에는 경주에서도 황룡사지 만한 곳이 없다. 분황사 주차장에서 걸어 들어가면 된다. 입장료 없음.

 

선덕여왕릉
시내 동남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낭산의 남쪽 봉우리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 관광코스에는 잘 포함되지 않는다. 선덕여왕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 황룡사 9층탑을 만들고 김유신과 김춘추를 등용해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울창한 솔숲 가운데 외로운 봉분이 인상 깊다. 문무왕의 화장터로 전하는 능지탑이나 남쪽의 사천왕사지, 동쪽의 강선마을에서 진입할 수 있다. 입장료 없음.

글· 사진 김병훈
출처 터치아트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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