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6(일)
조선의 궁궐 길  

눈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축물은 한옥이다. 너울거리는 한옥 기와에 내린 눈은 기와 모양 따라 흰 물결이 된다. 돌담 위에 앉은 눈은 담을 경계가 아니라 풍경으로 만든다. 장독대 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은 따듯한 정이 넘치는 가족의 행복이다.

 

 

눈 내린 아침이면 나는 그래서 작은 여행을 준비한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한옥과 눈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고궁을 찾는다. 이런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어서 눈 온 뒤 고궁 나들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 보다 많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눈밭은 단순해서 더 따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설경이 가장 아름다운 창경궁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눈 온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창경궁이다. 경복궁의 설경은 장엄하지만 창경궁은 처마를 맞댄 건물이 때로는 옹기종기 모였고 어느 곳에서는 깃을 펼치고 시원스럽게 자리 한다. 그런 풍경이 다양한 설경을 만든다.


창경궁 뷰포인트는 춘당지와 풍기대 주변. 수양버들 낭창이는 봄 춘당지 풍경이 좋다. 풍기대 옆에서 내려 보는 영춘헌, 집복헌, 양화당, 통명전 풍경은 봄이면 꽃으로, 여름이면 푸르른 소나무로, 가을이면 갈잎 단풍으로, 겨울이면 기와를 덮은 눈으로 꾸며진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태종2년(1412)에 세우고 광해군이 즉위 하던 해인 1608년에 다시 세웠다.

 

30~40분 정도면 창경궁을 둘러본다. 정문인 홍화문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걷는다. 돌담을 끼고 우회전 하면 창덕궁이다. 예전에는 출입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요즘은 궁궐만 보는 경우는 수시로 입장할 수 있다. 다만 후원 관람 시간은 정해져 있다.


창덕궁은 자연의 향이 가장 짙은 궁궐이다. 숲이 우거지고 흙 향도 진하다. 1405년 지어진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불타 무너진 뒤 광해군 때 다시 지었다. 가장 먼저 세워진 경복궁(1395년 건립) 보다 더 많은 세월 임금과 함께 한 곳이기도 하다. 1997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가는 길이 백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걷는다. 조금 걷다 보면 창덕궁 돌담이 오른쪽 골목으로 이어지는데 그 쪽으로 간다. 길 왼쪽 북촌면옥 건물을 끼고 좌회전. 조금 걷다가 뒤돌아 본 풍경이 예쁘다. 창덕궁 돌담과 궁궐 건물이 잘 어울렸다.


창덕궁을 뒤로 하고 걷는다. 오래된 건물에 ‘최소아과’ 간판이 걸렸다. 그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 좁은 길을 따라 걷는다. 낮은 건물이 정겹다. ‘이태리면사무소’ 등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간판도 눈에 띈다. 한 세대 전 거리를 걷는 기분이다. 그 길 끝에 중앙고등학교가 있다. 거기서 좌회전 한 뒤 처음 나오는 왼쪽 골목길로 진입한다. 골목길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더니 멀리 기와지붕이 옹기종기 모인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궁궐의 기와지붕은 화려한 곡선의 이미지이지만 북촌 한옥마을에 옹기종기 모인 기와지붕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뒷동산 능선이며 앞개울 여울이다. 골목은 개울처럼 자연스럽게 굽고 꺾이며 이어진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서 큰 길을 건넌다. 돈미약국 골목길로 접어든다. 가회동 한옥 골목길이다. 


붉은 벽돌 모퉁이집 앞에서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데 가운데 길로 걷는다. ‘북촌11로나길’ 이정표가 보이면 그 쪽으로 가지 말고 7~8m 정도 앞으로 가서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첫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 길을 선택한다. 이 길이 북촌한옥마을에서 가장 예쁜 길이다. 드라마 등에 자주 등장하는 골목이기도 하다. 골목길을 올라가면서 보는 풍경도 괜찮지만 다 올라가서 뒤돌아보는 풍경도 놓치면 안 된다. 파란 하늘 아래 한옥과 골목 먼 데 도심의 풍경이 한 폭에 다 들어온다. 거기서 몇 걸음 옮기면 차 두 대 정도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도로 보다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위에 올라서서 풍경 감상을 마무리 한다. 풍경 감상을 하러 올라섰던 작은 주차장을 가운데 두고 길은 또 갈라지는데 주차장을 바라보면서 왼쪽 길로 걷는다.


길은 삼청동길을 내려 볼 수 있는 길과 만나는 데 거기서 우회전 한 뒤 계속 가다가 막다른 삼거리가 나오면 왼쪽 계단길로 내려간다. 계단길 초입 담에 ‘맑은샘길’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붙었다.

교태전 뒤 아미산에 꽃 피는 봄이 오면....

맑은샘길은 삼청동과 만난다. 작은 개울물이 큰 개울물과 하나가 되어 흐르는 것처럼 길도 그렇다. 삼청동길은 가을 은행잎 노란 단풍이 형광빛으로 빛날 때가 가장 아름답다. 온통 노란 세상 노란물 떨어질 것 같은 그 길에 겨울이면 눈이 와야 한다. 눈은 혹독한 겨울을 포근하게 만드는 ‘휴식’이다.

 

경회루. 경복궁에서 근정전 다음으로 사람들 시선을 끄는 곳이다. 국보 224호다.

 

삼청동길을 빠져 나오면 경복궁이다. 경복궁에서 꼭 봐야 할 것은 근정전경회루다. 현존하는 최대의 목조건물인 근정전은 웅장하면서도 날렵하게 생겼다. 근엄함 속에 품고 있는 다정함도 느껴진다. 그와 상대적으로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 경복궁 교태전 뒤뜰이다. 그곳을 일컬어 이른바 ‘아미산’이라고 하는데 궁궐 꽃 풍경 중 으뜸이다.


아미산은 왕비의 침전 뒤에 인공으로 만든 정원이다. 봄이면 갖은 꽃들과 신록으로 물드는 데 그 빛깔과 향기가 은은하면서도 화려하다. 경복궁 광화문은 최근에 다시 만들어 세웠으며 그 앞길에 세종대왕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그 지하에는 자료실 및 각종 체험관을 만들었다.


광화문을 뒤로 하고 걸어가다 세종로 사거리를 만나면 서대문 쪽으로 우회전 한다. 그 길에 역사박물관과 경희궁이 있다. 역사박물관 앞 뜰 길 가에 옛 전차를 전시했다. 그 앞을 지나면 경희궁이 나온다. 경희궁은 광해군 때 창건 됐다. 처음에는 경덕궁이라 했는데 영조 때 경희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 경희궁은 창건 당시보다 많이 축소 됐다. 경희궁의 정문도 지금 구세군회관 건물 자리에 있었다. 

이제 마지막 궁궐인 덕수궁이 남았다. 경향신문사 건물 앞을 지나 정동길로 접어든다. 이 거리 또한 가을 은행잎 노란 단풍이 보기 좋은데 지금은 잎 다 떨어진 겨울 길이다. 그 길에서 반가운 이름 하나 만났다. 광화문연가 등 주옥같은 노래를 만든 작곡가 이영훈을 추억하는 비가 있었다. 그 비 옆에는 그가 만든 노래인 ‘광화문 연가’를 새겼다. [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이라는 노랫말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덕수궁 돌담길에서 팔짱을 낀 연인들이 봄 같이 웃으며 걷는다. 노래가 있어 겨울 덕수궁 돌담길도 따듯하다.


덕수궁 석조전 아래 서서 겨울바람을 쐬며 잠시 머문다. 열강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집중되던 조선말, 500년을 지켜온 왕조의 역사를 품고 대한제국으로 거듭나려 했던 황제 고종의 고뇌가 바람처럼 날이 섰겠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기자를 거쳐 2003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전국을 걸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다. [서울문학기행],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살아 있는 서울·경기], [맛 골목 기행], [서울 사람들], [대한민국 산책길] 등의 책을 썼다. 이름 없는 들길에서 한 번쯤 만났을 것 같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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