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2(수)
호남제일 포구 전남 영광  

영광은 조선시대 말까지 곡식과 특산물을 거둬들여 한양으로 보내는 조창(漕倉)이었다. 법성포는 바로 그 현장이고, 호남 제일의 포구였다. 영광엔 아직도 ‘돈 실로 가세. 돈 실로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 실로 가세’라는 뱃노래가 전해온다. 근세 들어 일제침략과 다른 운송 수단의 발달로 그런 ‘역사적 지위’를 잃어가면서, 영광도 서서히 사그라들게 됐다. 그러나, 그때의 영화(榮華)를 되살려내려는 작업이 다시 한 번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다. 면면히 내려온 역사적 자원, 다시 빛을 발하는 굴비·천일염 등 수산업, 관광산업 등을 통해 대변신을 꿈꾸고 있다.

‘굽히지 않은 영광의 역사’, 몸과 맘이 튼실해진다

영광의 역사에서 굴비를 빼놓을 수 없다. 굴비(屈非)는 한자 그대로 ‘굴하지 않는다’는 뜻. 고려 인종 때 왕위를 찬탈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이자겸의 언행에도 비롯됐다. 그는 붙잡혀 이곳 법성포로 유배간 후, 맛본 조기를 임금에게 진상하면서 혹시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염려, 이 생선을 ‘굴비(屈非)’라고 적어 보냈다는 것이다. 비록 ‘귀양살이 신세이긴 하나, 결코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결기가 들어있다.

영광은 백제 침류왕 때 불교가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인도명승 마라난타가 진나라를 거쳐 법성포로 들어온 후, 불갑면 모악리 산자락에 명사찰 불갑사를 지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호남권에 자비를 퍼뜨린 공간이었다. 영광군은 마라난타가 첫 발을 디딘 법성포에 간다라 건축양식의 유물관 등 각종 시설을 갖춘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를 꾸며 놨다.

기독교 순교지인 염산면 설도항도 있다. 6·25 전쟁 당시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은 196명의 신자가 수장당한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 야월교회 앞에는 순교비가, 항구엔 순교기념탑이 각각 세워져 있다. 연중 참배객들이 찾고 있다.

영광은 원불교 발상지이기도 하다.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백수읍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났다. 이곳이 ‘영산성지’로 단장돼 있다.

‘간양록’을 남긴 강항(姜沆·1567~1618)을 배출했다. 그는 정유재란 때 군량미를 모으러 고향에 내려왔다 왜군에 잡혀 일본에 끌려간 후 일본 현지 보고서라 할 수 있는 ‘간양록’을 남겼다. 그는 포로이면서도 당시 일본 지도자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쳐 ‘제2의 왕인박사’로 추앙받았다. 불갑면 쌍운리에 그를 기리는 사당 내산서원(전남도 기념물 제28호)이 있다.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서리고 어버이 한숨 쉬는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으리.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임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세라’ 가수 조용필은 강항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해 인기를 모았다.

 

  • 1 법성포항의 과거와 현재 모습. 법성포항은 조선후기까지 조창이 설치된 호남 제일의 포구였다.
  • 2 법성포항과 함께 영광의 발전축인 영광읍.
  • 3 원불교 창시자인 박중빈 대종사가 태어난 영산성지.
  • 4 6·25 당시 공산군의 종교탄압에 맞서다 신도 196명이 수장당한 설도항에 있는 순교탑.
  • 5 바닷물을 끌어들여 만드는 염산면 천일염 염전. 만들어진 소금을 창고로 나르고 있다.

굴비․천일염․풍력, 자연 그대로를 만들어 판다

연한 비린내가 해풍을 타고 코를 스친다. 그런데 거북하기는커녕 침샘이 요동친다. 굴비의 마력(魔力)이다. 법성포 포구에 줄지어선 섶마다 걸린 조기. 좋은 볕 받아 잘도 ‘익어간다’. 영광군은 매년 굴비를 팔아 4500억 원대 매출을 올린다. 여전히 지역 최대의 수입원이요, 버팀목이다. 굴비의 유명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홈쇼핑, 인터넷 판매망 등이 속속 구축되면서 굴비 판매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영광 주민들은 몇 해 전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 유혹을 견뎌냈던 사실을 자랑삼아 말한다. 만약 당시 정부의 수천억 지원 약속에 홀려 처리장을 받아들였다면, 굴비의 이미지는 대추락했을 것이고, 굴비산업은 그대로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천일염 산업도 그렇다. 염산면과 백수읍 바닷가 일대 124곳, 580㏊에 염전이 둥지를 틀고 있다. 마치 바둑판처럼 보인다. 매년 6만여t을 생산, 100억원 이상 수입을 올린다. 천일염 산업은 앞으로 탄탄대로를 기약해놓고 있다. 그동안 ‘광물’로 취급돼 설자리를 찾지 못했던 천일염이 법적으로 ‘식품’으로 분류돼 판로가 활짝 열렸다. 특히 세계적인 소금으로 알려진 프랑스 게랑드 소금보다 나트륨 함량이 적으면서도 마그네슘·칼륨·칼슘 등 미네랄 성분이 훨씬 많이 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돼 주목을 받고 있다.

영광군에는 대규모 산단이 들어서고 있다. 대마면 송죽리 일대 164만㎡ 부지다. 3년간 2000억 원을 들여 대역사를 펼친다.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이곳에 들러 미래 녹색성장 산업 기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영광군은 이곳을 국내 전기자동차 산업특구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CT&T와 AD모터스, 탑알엔디 등 국내 5개 전기자동차 업체 중 3개 업체가 투자를 결정했다.

정부가 지난달 2일 대규모 해상 풍력단지 건설도 확정했다. 9조원을 들여 2019년까지 세계 3대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영광 땅에 구체화하고 있다. 영광군은 백수읍 사하리와 염산면 두우리를 거점지역으로 삼을 계획이다. 풍력발전에 필요한 풍속이 기준치(초당 6.6 이상)보다 훨씬 높은 평균 7.0~7.5이나 돼 여건이 전국에서 가장 양호하다는 것이다.


법성포항 앞을 메운 매립지(25만9000여㎡)가 ‘굴비타운’으로 변신, 쇼핑 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숱한 관광지와 인상 깊은 축제 ‘전국 시선’ 사로잡는다 

백수해안도로는 영광의 최대 관광자원이다. 마치 동해안 도로를 달리듯,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나있다. 백수읍 길용리 원불교 영산성지에서 구수리, 대신리를 지나 백암리 동백마을까지 모두 17㎞거리다. 서해안에서 이렇게 굽지 않고 달리는 길은 여기가 유일하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뽑힌 길이다. 금방이라도 바닷물이 넘실거릴 만큼, 바닷물이 길 옆까지 출렁거린다. 때로는 물이 빠져나가 헐벗은 갯벌을 드러내기도 한다. 절벽이 이뤄진 해안에는 거북바위, 모자바위 등 기묘한 바위들이 즐비하다.

완벽하게 해넘이 보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동해의 일출 광경에 못지않은 장관을 빚어낸다. 곳곳에 점·점·점 섬과 무인도가 비추면서 바다를 벌겋게 물들인다. 가장 자리가 좋은 노을전시관(지상2층·지하 1층)이 들어서 있다. 상·하월도, 송이도, 안마도 등 사람이 사는 섬으로 들어가 낚시를 하거나, 바닷가 절경을 봐도 좋다.

또 바닷가 온천수 휴양관광단지가 조성돼 있어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지하 600m에서 섭씨 27.1도 암반수를 끌어올렸다.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4385㎡로 해수 온천탕과 해수풀장, 펜션, 방갈로,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탕 안에서 서해안 낙조를 맨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색체험 장소다.

불갑 저수지 수변도로도 드라이브 길이다. 2.8㎞ 구간에 81개의 풍력가로등이 설치돼 있다. 밤이면 저수지가 반사된 불빛과 가로등이 볼만하다. 풍력가로등은 초속 1~2m 바람만 불어도 6시간 사용이 가능하다. 대체에너지 자원 견학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가마미해수욕장은 굳이 여름이 아니더라도 사철 인파가 몰린다. 축구운동장 5~6개 나올 정도로 넓은, 바닷가 허허벌판이다. 반달 백사장, 200여 그루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이 명물이다.

법성포 단오제도 유명하다. 동해안 강릉 단오제와 쌍벽을 이룬다. 400년이 넘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대자연에 풍요로움이 깃들고 녹음방초가 우거진 여름 초입, 음력 5월 5일 펼쳐진다. 뭍의 주재신에게 올리는 인의제(산신제), 바다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용왕제(칠산풍어제)가 함께 열린다. 일련의 의례를 마치고, 법성진 숲쟁이공원(국가지정명승 제22호)에서 열리는 전국그네뛰기대회가 하이라이트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운치 있게 군락을 이룬 곳. 시원한 그늘 아래서 전국국악경연대회, 씨름대회, 윷놀이 등 푸짐한 전통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상사화 축제는 정말 이색 축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상사화 군락지인 불갑산 자락에서 9월 중순 열린다. 일명 꽃무릇이라 불리는 이 꽃은 분홍색, 붉은색, 진노랑 등의 색을 낸다. 꽃이 필 때 이미 잎이 저버려,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상사화(相思花)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한창 꽃이 절정을 이룰 때는 마치 산자락에 꽃창살이 드리운 듯 하다.

매년 9월 중순 염산면 설도항에서 소금·젓갈축제도 열린다. 특히 이곳 새우젓은 6월에 잡아 3년 이상 묵힌 질 좋은 천일염으로 절여 만든 육젓으로 이름나 있다. 색깔이 흰데다, 통통하고 맛이 고소하다.

바다와 농촌 ‘해보기 체험’ 즐비, 친구․가족․연인과 함께

소금만들기 체험은 일품이다. 태양 아래 은빛으로 빛나는 새하얀 소금 알갱이가 여물어가는 광경이 신기하다. 소금 밀기, 모으기, 운반하기, 수차체험 등 바닷물 들이기에서부터 창고로 운반하기까지 소금만들기 전과정을 직접 해볼 수 있다.
 
염산면 두우리 앞 갯벌에서 고속 드라이브와 함께 조개·백합을 파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이곳 갯벌은 자동차나 경운기가 달려도 될 만큼 단단하다. 물이 나면, 해안가에서 바다 쪽으로 무려 4㎞나 들어갈 수 있다. 갯벌이 무른 곳에선 호미로 백합과 맛조개를 캘 수 있다.

 

묘량면 효동마을에서는 훼손되지 않은 ‘그 옛날’을 볼 수 있다. 뒤엄나무 정자나무가 마을 입구에 서 있고, 초가집, 그리고 3㎞ 고불고불 이어진 돌담길, 고인돌이 있다.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마을을 돌아볼 수 있다. 마을 돌담쌓기, 초가지붕 이엉 얹기 등도 할 수 있다. 임권택 영화감독의 [아다다]와 [호호전], [춘화도], [가루지기], [개벽]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던 마을이다.

 

군남면 용암마을은 ‘녹색체험’이 좋다. 붕어·미꾸라지·우렁·오리 잡기, 수박·참외·옥수수·오이·토마토·감자·메밀·고추 등을 딸 수 있는 체험장이 마련돼 있다. 청포단지, 대나무숲 체험장, 야외 수영장도 있다.

영광의 맛, 굴비백반과 백합죽, 그리고 덕자찜

바다와 뭍에서 나는 먹거리가 풍성하다. 굴비 고장답게 굴비백반이 대표음식이다. 법성포항 부두와 영광읍내에서 1만~5만원에 먹을 수 있다. 굳이 비싼 것을 시키지 않더라도, 상다리가 휠 만큼 푸짐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백합으로 만든 음식도 별미다. 4~5월에 많이 나는 백합으로 탕·죽·구이·회·찜 등으로 먹을 수 있다. 향긋하고 담백하다. 또 차진 맛이 일품이다. 담석증과 간질환에 좋고, 핵산과 철분이 많아 노화방지에도 좋은 음식이다. 모싯잎 송편도 알려져 있다. 일반 송편보다 2배  이상 크다. 콩·깨·팥가루를 넣지 않고 동부를 통째로 넣어 향과 씹는 맛이 독특하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는 모싯잎은 장운동과 이뇨를 돕는다. 덕자찜도 이름나 있다. 병어처럼 생긴 생선이다. 5~6월이 제철. 밤과 대추 등를 넣고, 온갖 양념을 얹어 쪄내면, 담백하고 쫄깃하고 부드럽다.

 

키토산·게르마늄 성분이 많다는 꽃게로 탕, 회무침, 찜 요리도 좋다. 6월에 나는 꽃게가 가장 맛있다. ‘오도리’로 불리는 보리새우(6~7월)와 대하(여름) 요리, 설도젓갈 등이 군침을 돌게 한다.

 배명재 /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 사회부를 거쳐 1993년부터 광주에서 광주시청, 전남도청, 경찰서 등을 출입하고 있다. 문화가정과 섬 문화, 중국 사회와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한국인 절반 이렇게 산다-비정규직 800만 시대’를 공동취재해 2009년 한국기자상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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