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8(월)
질문하라..그 심오한 본질  

   
 
 
2,5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철학! 우리는 선대의 철학자들이 이룩해 놓은 사상을 배움으로써, 보다 간편하게 생각을 정립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행운아들이다. ‘무’에서 틀을 일궈내기란 그만큼 많은 인내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철학의 시작은 과연 어떠했을까? 순조로웠을까 아니면 험난했을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한 데서 출발하였나? 미신과 종교, 신화, 마술적 풍토 속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 철학이라 불릴만한 지적 자료를 남긴 고대 선조를 만나보자.

질료(matter)에 매혹된 밀레토스 학파

태초의 철학은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시대보다 200년 이상 앞선 BC 6세기, 현재 터키가 위치해 있는 소아시아 반도의 서쪽 해안에서 출현하였다. 식량 자원이 부족했던 옛 그리스인들은 바다로 나가 물자를 공급해 줄 식민지를 다수 건설하였는데, 이 중 하나가 이오니아 지방의 도시 밀레토스[Miletos]였다. 지중해 해상 무역의 거점이 되어 물질적 풍요와 번영을 누렸던 이곳은,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새로운 학풍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생계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리자 사람들은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사변적으로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그럼에도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밀레토스의 철학자들은 불변의 진리이자 만물의 근원인 아르케(arche)를 찾기 위해 다음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나? (What is the world made of?)”

이에 따라 그들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근본 ‘물질(substance)’, 즉 궁극의 ‘질료’를 찾는 일에 몰두했으니, 문헌상 최초의 철학자로 전해지는 탈레스[Thales, BC 624(?)~BC 546(?)]는 ‘물’을,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0~BC 546]는 직접 고안한 ‘무한정자(apeiron)’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그리고 그의 제자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BC 585(?)~BC 525]는 ‘공기’를 각자 아르케로 제시하였다.

태초의 철학자들은 그 과학적 접근방식 때문에 자연 철학자라 불린다. 실제로 그들은 일종의 과학자였는데, 한 예로 탈레스는 일식을 예측했던 천문학자이자 그림자를 이용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계산해 낸 뛰어난 수학자이기도 했다. 자연에 대한 이들의 의문을 현대 물리학자들이 꾸준히 풀어가고 있다.

형상(form)에 매혹된 피타고라스 학파

한편, 비슷한 시대에 자연 철학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르케(arche)를 찾아 나선 철학자도 있었다. 밀레토스에 인접한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으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지 크로톤에서 활동했던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500(?)]를 보자. ‘떨어진 것을 주워선 안 된다’ ‘자고 일어난 침구에 흔적을 남기지 마라’ ‘콩이나 동물의 심장을 먹어선 안 된다‘ ‘재 위에 병 자국을 남기지 마라’ 등 원시적 금기와 신비로운 색채로 가득 찬 종교·정치집단을 이끌었던 그는, 물질보다는 사물의 형상(form)에 집중했다.

사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나?’라는 의문은 본질적으로 질료형상(혹은 구조, 꼴) 양자에서 답을 찾도록 요구한다. 물질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이내 또 다른 물질이 동일한 구조(structure) 속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원래 사물의 성질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은 구조나 형상이 아니겠는가?

만물의 근원이 ‘수(number)’라고 했던 그의 주장은 그냥 웃어넘기기엔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다. 그는 음계와 음정이 1,2,3,4 사이의 비율을 이루고 있음을 밝혀냈으며, 건축물이 적당한 비례에 맞춰 구성될 때 보다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완벽한 ‘수적 비율’이야 말로 우주의 타고난 질서이자 혼돈 속에서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요소인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질료로 이루어졌는지가 아니라, ‘어떤 비율과 어떤 양(quantity)으로 혼합되어 있느냐’ 였다. 형식에 주목했던 플라톤이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그리스 동쪽에서 질료를 중시한 밀레토스 학파의 과학적 탐구가 활발했다면, 그리스 서쪽에서는 형상을 중시한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종교적이고 신비로운 학풍이 꽃을 피우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모두 흡수되어 소크라테스 이후의 아테네 철학이 만개할 수 있었다.

고대와 공감하는 법

태초의 철학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현재의 시각을 과감히 버릴 필요가 있다. 밀레토스 학파를 단순히 유물론이라 칭한다면 이는 오해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물질과 정신을 엄격히 분리하여 전자만 중시했던 것이 아니라 물질 속에 정신을 포함하여 설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물리학을 배워 운동이 외부에서 가해진 힘에 의해 발생하는 것임을 알지만, 과학이 크게 발달해 있지 않았던 당시로써는 물질과 힘을 분리시키지 못했다. 탈레스와 아낙시메네스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물과 공기를 아르케로 꼽은 이유는 우주를 스스로 움직이는 살아 있는 생물로 인식한 데서 연유한다

초기 희랍철학자들의 사유는 토막 글로만 남겨져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파악하기 무척 어렵다. 그러나 그들이 만물의 근원으로 내세웠던 것을 비웃거나 가볍게 여기기보다는, 어떠한 질문을 던졌으며, 어떤 방식으로 해답을 찾아갔고, 어떠한 이유에서 나름의 의견을 개진했던 것인지’ 유념해서 공감대를 형성해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라. 피타고라스가 아름다운 음악에서 수학적 비율을 알아차렸을 때의 흥분을, 탈레스가 액체, 고체, 기체 상관없이 생명이 유지되는 모든 것에 공통으로 물이 함유되어 있음을 깨닫고 느꼈을 희열을! 그들이 발견한 내용이 당시엔 얼마나 선진적이며 가치 있고 충격적이었는지를 말이다.

 
  참고문헌 :『The Greek Philosophers (from Thales to Aristotle)』
(W. K. C. Guthrie, Oxford University Press, 1950)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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