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4/29(금)
스피노자[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  

일반적으로 형이상학, 논리학, 인식론 등이 원리나 개념 등을 탐구하는 사변적인 이론철학[theoretical philosophy]이라면, 윤리학, 미학, 정치학 등은 가치의 '실현'을 목적 삼는 실천철학[practical philosophy]에 속한다. 그런데 형이상학과 인식론, 심지어 심리학까지 포괄한 거대한 윤리 체계를 세운 철학자가 있었으니, 시인 노발리스가 처음 지칭한 이후 '신에 취한 사람'이라 널리 일컬어져 온 스피노자[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로서의 신을 부정함으로써 모태신앙이던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한 스피노자 – 사색에 몰입한 고독하고 정적인 삶을 살았지만, 독창적이고 비판적인 사상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았던 그가 생전에 출간한 저서는 오직 두 권뿐이다. 다른 책들은 (사유의 깊이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위한 보조적 역할에 서 있다고 전해지는 명저, 『기하학적으로 증명된 윤리학(Ethics Demonstrated in the Manner of Geometry, 1677)』(이하 『에티카』)역시 사후에 출간되었다. 그의 철학이 집대성된 필생의 역작 『에티카』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스피노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궁구한 인본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일시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에의 열정은 삶을 불행하게 하지만, 영원하고 무한한 것에의 열망은 충만한 기쁨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참된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지복에 이르는 것을 철학적 화두로 삼은 그의 윤리학은 필연적으로 방대한 규모가 될 수밖에 없다. 실재의 본질을 탐구해야 하기에 '형이상학'을 포함하며, 사물의 진실된 모습을 지각해야 하므로 '인식론' 또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형이상학에서 출발하여, 인식론을 거쳐 윤리학에 다다른다.

이 책의 전 제목이 '기하학적으로 증명된 윤리학'이라는 점에 주목해 보자. 흥미롭게도 『에티카』는 총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각 부가 '공리'와 '정의'로부터 시작하여 이후 제시되는 '명제(혹은 정리)'들을 밝혀가는 '연역적' 구조로 짜여져 있다. 일부 비판자들은 그가 증명 불가능한 대전제(공리, 정의)를 먼저 내세워 논지를 진행함으로써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오해이다. 이러한 구성은 자신의 사상 체계를 보다 잘 설명하고자 선택한 하나의 방법일 뿐, 일반적인 연역법처럼 대전제로부터 필연적 순서와 절차에 따라 명제들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전제들은 처음엔 모호하게 제시되었다가 뒤이어 등장한 구체적인 명제들을 통해 보다 명백한 것이 된다. 공리와 정의 그리고 그로부터 도출된 명제 모두 실상 그들이 직조한 '체계의 문맥' 속에서 비로소 증명되는 유기적 구조가 『에티카』의 서술방식이다.

이는 책을 집필하기 전에 이미 사고의 전체 틀이 완성되었기에 가능했다. 철저하고 빈틈없는 사색 끝에 통찰에 이른 후, 당시 믿을만한 것으로 여겨지던 수학의 기하학적 방식을 차용함으로써 타인의 이해를 도모했던 것 - 각 명제 끝에는 '증명되었음'들 뜻하는 라틴어 문구, Q.E.D(quod erat demonstrandum)가 달려있으니 눈여겨 보자.


그렇다면 '진정 값진 것'을 추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삶이란 무엇일까? 스피노자에게 그 해답은 '신'에 있었다. '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 고요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그가 생각한 가장 고귀한 형태의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가 『에티카』 제1부에서 다루고 있는 신은 결코 전통적 의미의 신이 아니다. 신이 만약 창조주라면, 그것은 자신이 창조한 창조물과 구분되기에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기독교 신은 '순수 정신'이지만, 그의 신은 '정신'이자 '물질'이다. 기독교 신은 '초월적 원인'이지만, 그의 신은 '내재적 원인'이다. 다른 어떤 목적이나 원인 없이 내적 필연성으로 끝없이 운행해 나가는 자족적 체계로서, 무수한 '속성[attribute]'을 가진 유일한 '실체[substance]'가 바로 스피노자의 신이다. 모든 것을 포함하기에 무한하고, 시작과 끝이 없기에 영원한 맑은 역량 혹은 에너지 - 이는 곧 '자연'이다. 그것은 만물의 궁극적 원인으로, 인간을 포함한 유한자[양태, mode] 전체에 내재하여 그들이 원초적인 실존역량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피노자는 종교의 과오 중 하나가 신을 선한 존재, 인격적인 존재로 인식한 점이라 했다. 사실 선악은 인간 인식의 산물일 뿐,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한 자연 그 어디에도 도덕적 관념이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넘치는 능력으로 인해 사랑받아야 할 경탄의 대상, 거룩한 비인격적 실체로 신을 바라 본 그는, 누구보다 신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했음에도 무신론자라는 비난 속에 한 세기 이상 경시되었다.

스피노자는 중세적 언어(신)로 중세를 박살 내고, 근대의 포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또한, 결정론적 사고관을 지녔음에도 인간의 자유와 이상의 실현을 강조했다. (탐욕은 절제로, 분노는 인자함으로 다스려야 하듯) 정념은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반대 성향의 보다 지적이고 능동적인 감정'을 통해 극복 가능 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은 다양한 제약에 얽매이지만, 자신 안에 내재해있는 신의 활동, 즉 코나투스[conatus]를 통해 예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질을 지켜 계속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신의 관념으로 나아가 신(곧 자연) 안에서 세계를 파악하는 지성이 필요하다. 정신이 극히 능동적이 되었을 때 영원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윤리적 실천은 가능할지언정 결코 쉽지 않다. 『에티카』의 마지막 구절을 보라!

"모든 탁월한 것은 매우 드물고, 또 매우 어렵다."
 
참고문헌 『서양 철학사』 (스털링 p. 렘프레히트, 을유문화사, 2000)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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