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11(금)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누구나 어렸을 때 '머리 위로 손들고 있기' 벌칙을 서 본 적 있을 것이다. 단지 머리 위로 팔을 들어 올렸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면 어께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손을 들어 올리고 있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시작된다.

바로 중력의 경험이다. 우리는 이 때 중력의 존재를 '느낌'으로 안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우리가 과학시간에 짧게 배운 지식을 한 번 돌이켜 보라. 인간은 '변화'만을 감지한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 것의 존재는 알아채지 못한다. 자동차가 시속 200km의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동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속도의 변화가 없는 등속운동일 경우, 우리가 눈을 감고 있다면변화를 감지할 수 없다.

반대로 속도가 변하면 우리는 느낀다. 버스 안에서 휘청거리는 모든 사람은 '속도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가(감)속운동은 인간이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변화'만을 감지한다면 중력은 어째서 느껴지는 것일까? 혹시 즉 '중력'과 '가속운동'이 같은 것일까?

우리가 언제나 체감하고 있는 지구 고유의 압박감 중력. 그리고 속도가 빨라지는 자동차에서 느끼게 되는 가속도의 느낌. 이 둘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둘이 '같은 것'이라고 가정하고 모든 업적을 이뤄낸 남자가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은 지구와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존의 방식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즉 그의 논리대로라면 지구는 인간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점점 빠른 속도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속운동을 하는 자동차에 막대를 달고, 그 앞에 셔츠를 매달아 놓으면 위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빠른 속도에 밀린 와이셔츠의 모양은 자동차가 가진 속도감을 그대로 나타내 준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 보면 셔츠의 모양은 우리가 언제나 벽에 걸어 놓은 셔츠와 똑같다.
자동차에 끌려가는 셔츠의 신세가 이렇다면, 같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 우리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우리도 지구가 발밑에서 우리 몸을 빠른 속도로 밀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가만히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결코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점점 빨라지는 속도로' 지구가 우리를 밀어올리고 있는 것이며, 그 때문에 우리의 몸을 밀어 올리는 소파의 스펀지가 구겨지는 것이다.

언뜻 체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아인슈타인의 전환은 대단한 파장을 불러왔다. 중력과 가속도가 같다는 것은 단지 그럴 듯한 것이 아니라, 수학적으로도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놀라운 발견이었으며,(아인슈타인은 중력장 속의 빛의 휘어지는 현상이 가속운동 할 때 똑같이 발생하는 것을 증명했다.) 어쩌면 '모든 힘은 같은 것 아닌가?' 하는 거대한 의문점을 만들어냈고, 오늘날 모든 과학자가 이를 규명하기 위해 분투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라고 말할 때, 중력이란 사람을 끌어당겨 자유를 빼앗는 힘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관점을 도입해 보면, 중력이란 나를 끊임없이 높은 곳으로 밀어 올려주는 존재일 수도 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모든 것을 다 함께 밀어 올려서 결과적으로는 전혀 달라질 것이 없지만 말이다.

참고로 부모님이 '손들고 벌서기'를 시킬 때 아이들의 주먹을 쥐게 만드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손바닥보다는 주먹이 더 무겁다고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은 중력의 특성과 관계없이 '가위바위보' 놀이가 부모님께 끼친 영향일 것이다.
written by Joe (braincase@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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