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11(금)
운문사 비구니  
 
“운문사 비구니들이 /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 메주를 빚고 있다 / 입동 무렵 / 콩더미에선 더운 김이 피어오르고 / 비구니들은 그저 / 묵묵히 메주덩이만 빚는다 / 살아온 날들의 덧없었던 내용처럼 / 모두 똑같은 메주를 / 툇마루에 가지런히 널어 말리는 / 어린 비구니 / 초겨울 운문사 햇살은 / 그녀의 두 볼을 발그레 물들이고 / 서산 낙조로 저물었다” - 이동순, 「운문사 비구니」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에서 이동순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비구니에 대한 연모의 정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앳된 비구니를 바라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도 마음도 어질게 됨을 느낀다. (…) 그들을 마주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눈을 닦는다.” ‘운문사의 아름다운 다섯’ 중 첫째로 비구니들을 꼽아 찬양하고, “이것이 내 진심임을 속일 수 없다.”며 '앳된 비구니의 청순성‘에 대한 수줍은 고백을 적고 있다.

“자귀나무에 분홍꽃이 피면 팥씨를 뿌리”는 고운 노동을 하고, “별빛이 아직 아침이 되기 전에 먹는 정미한 음식”을 청신하게 마주한다. 비구니 스님들의 행장기를 담은 김영옥, 『자귀나무에 분홍꽃 피면』에 비친 비구니들의 일상은 숲 속 시냇물처럼 맑디맑다. 새벽 3시 기상, 3시 반 새벽예불, 아침공양, 운력, 소임, … 이런 일과를 되풀이하는 비구니들의 일상에서 자못 찻물 따르는 소리가 도로록 들리는 듯하다. 한편으론 범접하지 못했던 삶에 대한 동경을 넘어선 어떤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비구니란 '음식을 빌어먹는 여성'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비쿠슈니(bhiksuni)'를 옮긴 것이다. 삼국시대의 비구니들은 왕실을 중심으로 퍼진 불교의 바람으로 말미암아 유구한 역사 속 여성 위상에 큰 공헌을 보탠다. 서동요의 주인공 선화공주, 신라의 진성여왕과 선덕여왕, 백제 성왕의 딸 매형공주, 김수로의 왕비 허황옥, 원효대사의 연인 요석공주, 발해의 정효공주 등이 삼국시대의 대표적 여성 불자로 꼽힌다.

물 드시다 체하실까 봐 물바가지에 버드나무 잎 하나 띄워 건네던 참한 여인의 자태. 이에 반한 후고구려 장수 왕건에게 정혼을 약속받은 유화부인의 일화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 직하다. 유화부인 또한 오매불망 왕건만을 기다리며 13년 정절을 지킨 비구니였다. 버들잎이 맺어준 인연이라 하여 유화(柳花)부인이라 불렸던 이 여인의 13년간의 기다림은 오늘날까지도 순정의 신화처럼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노비, 기녀, 첩, 무녀 등의 함께 하층민 여성으로 분류된 비구니는 사회와 갈등을 빚으며 차별과 억압을 견뎌야만 했다.

비구니들에겐 이러한 취급이 낯설지 않다. 이미 불교 내에서 석가모니 때부터 비구(출가한 남자 승려)와 차별받아왔기 때문이다. 여자의 업장이 더 두텁다 하여 비구니의 계율이 비구보다 더 많고, 비구니가 경계해야 할 팔귀경계가 따로 존재한다. 그 내용인 즉슨 ‘100년이 된 비구니라도 처음 계를 받은 비구를 공경해야 한다’ ‘비구니는 비구의 죄를 말하지 못한다’ ‘비구를 꾸짖지 못한다’ 등이다.

이러한 종교 내의 여성차별은 불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비단 오늘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비구니는 소승의 수행자들 가운데 최고의 이상상이자 보시를 받을만한 존재인 ’아라한‘이 될 수 없고, 종단의 중책도 맡지 못하며, 자신보다 나이 어린 비구에게도 허리 숙여 절해야 하는 등의 만연한 차별을 감내해왔다.

한국은 대만과 더불어, 비구니 교단과 수행 전통이 살아 있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또한 비구니의 숫자도 비구와 비슷한 규모로, 조계종 출가승의 절반이 비구니라고 한다.

파르라니 깎은 맨머리로 푸른 숨결을 내뱉는 비구니들. 관습화된 차별적 전통을 걷어내고, 페미니즘적 시선도 떨쳐낸 뒤, 비구와의 비성차별적인 깨달음을 구현하는 그날. 비구니도 비구와 다름없는 인간 존재로서의 가치를 다시금 조명받아야 하지 않을까.
written by poulou (poulou@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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