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6(일)
한국 굿당의 메카..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이번 주제인 굿당은 여러분들에게 가장 생소한 주제일 겁니다. 컴퓨터상에도 ‘굿당’ 밑에 빨간 줄이 나오는 것을 보니 이 단어는 사전에도 없는 모양입니다. 굿당은 무당이 굿을 하는 곳입니다. 무당은 여러 곳에서 굿을 할 수 있는데 이 굿당은 가장 정식으로 하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어떤 유명한 굿당을 갔더니 그곳 주인이 굿당을 예식장에 비유하더군요. 우리가 예식장을 빌려서 결혼하듯이 무당이 굿당을 빌려 굿을 한다는 것이지요. 이 굿당은 보통 신령과 소통이 잘 되는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래야 기도가 잘 되겠지요.

 

인왕산에 위치한 국사당의 모습. 본래 남산 팔각정 자리에 위치해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인왕산으로 옮겨졌다.

한국 굿당의 메카, 인왕산 국사당

굿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당이 점을 쳐보고 사안이 중대해 신령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에만 굿을 합니다. 아울러 굿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쉽게 할 수도 없습니다. 굿당에서 굿을 할 때에 적어도 3명의 무당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일단 이들의 인건비와 악사들 수고비 등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지요(그 외에도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굿당은 구조가 아주 간단합니다. 평범한 방에 음식을 놓는 단이 있고 그 뒤에 신령들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굿을 할 때 여기에 음식을 차려놓고 한 거리씩 그 대상 신령을 향하여 굿을 하면 됩니다.

굿당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왕산에 있는 국사당입니다. 이곳은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려 산 위로 15~20분이면 갈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인왕산에 굿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는 분이 많을 겁니다. 그만큼 이 무속(무교)은 현대 한국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국사당에 가보면 뜻밖에도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도 그곳에 갈 때마다 외국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아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안내 책자인 <Lonely Planet>을 보고 왔을 겁니다. 보다 한국적인 것을 찾다가 그곳까지 온 것일 겁니다. 그런데 이곳에 가보면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주위에는 막걸리 냄새나 물건 타는 냄새가 나고 청소도 깨끗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는 이곳을 1980년대 말에 처음 방문했는데 그때에도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 샤머니즘의 헤드쿼터라는 곳이 이렇게 규모가 작고 남루한 곳이라니 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민속을 져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건물 안에는 좋은 무신도가 많습니다. 이 그림들은 중요민속자료 17호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그런데 이 굿당은 굿이 없을 때는 닫혀 있어 평소에는 이 그림들을 볼 수 없습니다. 굿은 보통 봄, 가을에 많이 합니다마는 (진)오구굿처럼 죽은 이를 위해 하는 굿은 때가 정해진 게 없겠죠. 어떻든 굿을 하는 날은 사당 안을 볼 수 있지만 남의 종교 의례를 하는 데에 들어가 볼 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굿당에 모셔신 산신상. 대부분의 굿당이 1960대 이후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미신 퇴치운동으로 주변부로 밀려나

굿당은 전국적으로 대단히 많습니다. 이것은 무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수십만에 달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겁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굿당’이라고 치면 굿당과 관련된 홈페이지도 있고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굿당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울에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수십 개의 굿당이 있었는데 이른바 ‘조국근대화’ 사업과 맞물려 시작된 ‘미신 퇴치운동’의 결과로 굿당은 현저하게 감소하게 됩니다. 이 굿당들의 역사를 보면 우리 민속이 그 동안 얼마나 천시를 받아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국사당을 보면, 지금의 인왕산 자리는 원래 자리가 아닙니다. 국사당이 원래는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다고 하면 믿으실 수 있을까요? 지금도 팔각정 자리에 가면 국사당 자리 표지석이 있습니다. 1920년대 초에 일제는 남산 중턱에 조선의 모든 신사를 대표하는 “조선신궁”을 짓습니다. 이 신궁에는 그들의 최고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모시게 되지요. 이 신궁으로 올라가던 계단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드라마도 이 계단에서 찍었지요. 그런데 남산 꼭대기에 조선 신을 모신 국사당이 있는 겁니다. 그걸 일제가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지요. 그래서 일제는 1925년에 이 국사당을 강제로 인왕산으로 옮깁니다. 원래 이 국사당은 태조 이성계가 14세기 말에 남산 신인 목멱대왕을 모시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 민간에서 인기를 끌어 한국 무속의 메카처럼 된 것이지요.

굿당들은 대부분 이런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3호선 무악재역이 있는 큰 길 변에 사신당이라는 굿당이 있었습니다. 이 굿당도 조선조에 유명했습니다. 중국으로 향하는 사신들이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신들이 이 굿당에 신고하지 않으면 말들의 발이 안 떨어졌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이름이 사신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은 1960년대에 도로 확장공사로 헐리면서 계속 유전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됩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구파발에까지 밀려났는데 마침 은평 뉴타운이 개발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저는 없어지기 얼마 전에 그곳을 방문했는데 그때 이미 명을 다 한 것 같더군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굿당에 있는 무신도(문화재자료 제27호)들이 참으로 좋았는데 지금 그 행방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민속은 이렇게 자꾸 스러집니다.

 

굿당의 신목(왼쪽)과 굿당에서 춤추는 무당의 모습(오른쪽).

민속신앙에 대한 이해와 보존이 시급

그런데 우리 민속이 이렇게 사라져만 갔던 것은 아닙니다. 가령 마포 부군당굿(서울시 무형문화재 35호)은 사라질 뻔했던 것이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이 굿은 원래 한강에 있던 밤섬의 주민들이 하던 마을굿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도시계획 차 무식하게 밤섬을 폭파해 주민들이 모두 강제로 육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굿당(부군당)을 신촌 로터리 부근으로 옮겨와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 굿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두 번 참석을 해보았는데 이 날만 되면 흩어졌던 마을 주민들이 다시 모여 하루 종일 굿을 즐기는 모습이 정겨웠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온 분들이 모두 고령이라 앞으로 이 굿이 어떻게 이어갈지 걱정입니다.

어떻든 이렇게 계속 줄던 굿당들은 한국의 경제가 부강해지면서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어떤 나라든 잘 살게 되면 이전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국의 전통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굿당은 이제 다시 수십 개로 늘어났습니다. 북한산이나 미아리, 국민대 옆, 세검정 등 많은 곳에 굿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그것들 중에 하나도 볼 수 없을까요? 그것은 이 굿당들이 아주 후미진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통은 나쁘지 않는데 찾기는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것은 거개의 국민들이 무교를 미신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가 무교를 다룬 데에서도 언급했지만 제 나라의 민속 신앙을 이렇게 미신으로 매도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십시오. 일본의 무교는 신도(神道)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누구도 그것을 미신이라고 매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 같은 사람은 ‘물위의 신사’와 같은 작품을 설계해 신사의 위상을 한껏 높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멀쩡한 민속 신앙을 감춰놓고 발전시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 무교는 중국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 가장 한국적인 신앙입니다. 이것을 발전시키고 말고는 이제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무신도 속의 붓다와 보살. 무속신앙은 중국의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 가장 한국적인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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