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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화)
모차르트는 하소연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으로 세계의 mp3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했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잡스의 아이팟은 음악을 의복처럼 만들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음악을 휴대할 수 있게 되었다.’

오직 잡스의 공로만은 아닐지라도, 오늘날 음악을 언제나 대량 휴대할 수 있으며, 시시각각 원하는 것을 골라들을 수 있으니 의복처럼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은 맞다.

그렇다면 소형 음향기기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 언제나 음악을 휴대하고픈 인간의 욕망은 어떻게 충족되었을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소수의 귀족만이 음악을 휴대할 수 있는 권능을 누렸다. 음악가들은 언제나 귀족이 머무는 근처에 있어야 했고, 귀족들이 원할 때는 달려가서 연주해야 했다. 왕실의 1급 음악가가 아니고서는 모든 연주자가 그러한 신세였다.



아름다운 음악이 풍성하게 꽃피웠던 바로크 시대. 궁정이나 교회에서 음악가의 지위는 상당히 낮아서 하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종보다는 높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만 요리사보다는 높지 않았다.

잘 알려진 작곡가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도 그러했다. 그는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치 가문에 고용된 음악가로 생의 대부분을 살았는데, 그의 복장은 하인들의 것과 같았고, 여행과 이주의 자유가 없었다. 그는 의미 있는 장소에서 연주했던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저녁식사의 여흥을 위한 연주를 해야 했다.

천재적 작곡가로 칭송이 자자한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어떠한가? 모차르트 역시 모진 대우를 참지 못하고 대주교에게 편지를 쓴 적 있다. ‘육체적 시종이 저보다 서열이 높습니다. 저는 음식 앞에서도 가장 서열이 낮습니다.’ 당시, 모여서 식사를 할 때면 서열에 따라서 앉는 위치가 달랐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자리가 시종의 것 보다 낮은 곳에 배치되어 있음을 한탄한 것이다.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잘 알려진 이 모차르트의 하소연은 과연 받아들여졌을까? 대주교는 한마디로 거절하고, 모차르트를 내쫓기까지 했다.

모차르트는 이 일을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알렸다. “내게 쓰레기니, 악동이니, 바보 천치니 욕을 퍼부었습니다. 나가는 문은 저쪽이라고 가리키며 나 같은 최악의 무례한과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소리쳤습니다.”

 


오늘날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받는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같은 음악가가 이와 같은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지식메일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존경해마지않았던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역시도 굴욕적인 고용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했고, 그 계약서에도 ‘학교 책임자의 허락 없이는 절대 도시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여행금지 조항이 들어있었다.

이것이 당대 예술가들의 삶이었다. 그나마 언급한 하이든, 모차르트, 바흐의 경우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들은 당시에도 음악적 업적을 널리 인정받아 음악가로서는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숱한 무명 음악가들의 삶은 상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이든이나 바흐의 음악을 듣기 위해 잘 치장된 공연장을 찾는다. 공연장에서는 격식과 예의를 차리고 우아한 시간을 즐긴다. 그러나 화려한 음악이 꽃피웠던 당시, 음악가들은 귀족들의 냉대와 굴욕 속에서 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 참고문헌 정윤수, 『클래식 시대를 듣다』
written by Joe (braincase@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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