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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화)
고독 속에서 예술의 빛을 발견한 기이한 천재, 글렌 굴드를 아는가?  
 

혹시 상체를 피아노에 박다시피한 채, 자신이 연주하는 선율을 따라 시종일관 허밍을 하며, 쓰러질 듯 사력을 다해 연주하는 한 피아니스트를 본 적 있는가? 한 번이라도 그에 대한 영상을 보았다면 금세 떠올릴 수 있을 테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1964년 불과 32살의 나이로 대중 공연을 절연했던 기괴한 천재, 글렌 굴드[1932~1982]의 음반을 당장 찾아보길 권한다. 특히 그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클래식 명곡을 새롭게 해석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놀라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당시 가장 뛰어난 비평적 찬사를 듣던 인기 피아니스트였던 그가, 왜 돌연 무대로부터 도피하여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했던 것일까? 1982년 사망할 때까지 다시는 무대 위에 오르지 않지만, 그가 음악을 그만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글쓰기, 방송출연, 작곡, 지휘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지만, 무엇보다 레코딩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고, 때문에 그는 음반이 하나의 예술이 되는 데 상당한 공헌을 한 인물로 거듭났다. 사실 그가 거의 맹목적으로 심취했던 것은 피아노 자체라기보다는 음 혹은 음향이었다. 이 기괴한 천재, 굴드를 만나보자.



글렌 굴드는 1932년, 캐나다에서 취미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버지와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꿨을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절대음감을 타고나 5살 때부터 즉흥연주와 작곡을 하는 음악 신동이었던 그는, 글을 깨우치기 전에 악보를 먼저 볼 줄 알았으며, 부모가 떼어놓지 않으면 밤 세워 연주할 정도로 피아노에 푹 빠져 살았다. 어머니에게 처음 피아노를 배운 이후, 레슨을 전문으로 하는 게레로 선생으로부터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9년간 사사 받는 동안, 어느새 그는 10대에 피아노 경연대회 일등, 음악 이론 시험 일등, 토론토 왕립 음악학교에 직업 피아니스트와 동등한 자격으로 합격하는 등 이론과 실기 양면에 걸출한 음악가로 성장해갔다. 그럼에도, 직업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스스로 연습 일과표를 짜는 일련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반면, 스포츠처럼 급우들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고, 성적은 부진했다. 청소년기부터 니체와 토마스 만의 소설을 탐닉했던 그의 내향적이고 은밀한 성격은 더욱 깊어졌다. 추후 그가 장르 불문하고 다양한 종류의 글을 썼으며, 말년에 직업 문인이 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굴드는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해 연주했다. 예전에도 말도 안 되는 갖은 핑계로 무책임하게 공연을 무산시키는 것으로 악명 높았지만, 돌연 절연을 선언했던 것은 음악을 음미하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던 대중의 속물근성과 몰지각함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피는 단순히 대인기피증, 무대공포증에 의해서기보다는, 예술적 신념에 따른 결단, 혹은 선택이라 보아야 한다.

그가 바라보는 음악이란, 어떤 것에도 속해있지 않고 경험의 단계 너머에 있어, 철저한 고독 속에서 명상을 통해 포착해 내는 ‘무언가’이다. 따라서 음악가는 외로워야 하며, 일상에 거리를 두고 긴 호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세상과 분리되어야 했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마치 수도사가 명상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순결한 과정과 같았다. 재계하듯 손을 깨끗이 씻고 녹음에 임했으며, 한 음 한 음 소중히 여겼다. 왼손잡이였던 그는 반주에 그치던 왼손 연주가 오른손 연주와 대등한 역할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를 원했고, 들리지 않는 무언의 소리를 포착하고자 했으며, 아름다운 음색을 따라 움직였다.


오늘날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립싱크 가수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다. 경우는 다르지만, 음향 기술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녹음보다 실 연주에 더욱 큰 가치를 두었는데, 특히 클래식 연주자들은 음질 개선을 위해 몇 가지 ‘효과’를 입히는 음반녹음을 일종의 ‘사기’로 여겨, 무대 위에서 직접 연주하는 것만이 진정한 예술적 행위라 여기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 밀려 클래식 변방 국가에 속했던 캐나다 출신의 젊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악기를 통해 나오는 ‘생소리’만을 예술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피아노 음을 좀 더 고차원적으로 만들기 위해, 당시 조작이라고 비난받던 다양한 음향 기술을 이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해를 거듭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녹음 방법을 시도했다. 지휘자 카라얀이 그를 가리켜 음반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라 칭찬한 것은 과언이 아니다.

재미있게도 굴드의 음반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크고 작든 간에 일종의 흥얼거림을 들을 수 있다. 그가 녹음 시에 무아지경에 빠져 끊임없이 허밍을 내뱉어, 이것이 마이크를 타고 고스란히 잡음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들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허밍이야말로 굴드가 자신의 연주에 완전히 심취해서, 온 신경을 다해 그와 하나가 됨을 알려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테크놀로지를 지향하는 녹음의 선구자지만 무대 위의 잡음은 개의치 않고 남겨 두는 ‘모순적 성향’은, 사실 굴드의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심각하게 예민하여, 어떤 이들에겐 광인이라 여겨질 정도로 기괴한 행동을 일삼았다. ‘열기’에 매혹되어, 여름에도 코트와 베레모, 장갑을 착용한 채 목도리를 칭칭 감아 얼굴을 파묻기 일쑤였지만, 동시에 북극의 추위도 사랑했다. 스타카토를 주로 사용하면서도 레가토를 지향하는 지휘자를 좋아했으며, 단선율 음악을 다성 음악처럼 연주하기도 했다.

그는 악수를 되도록 거절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 장갑을 낀 채 마지못해 했다. 세균이 옮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타인과 접촉을 꺼렸던 그이지만, 정작 자신의 외모는 다듬지 않아 지저분해 보일 때도 잦았다. 접촉에 대한 병적 히스테리는, 그가 늘 연주하던 스타인웨이 피아노 사의 한 조율사가 친근감을 표하고자 자신의 등을 두드렸다는 이유로, 어깻죽지 통증과 손가락 마비를 운운하며 30만 달러 손해배상을 회사 측에 청구했던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그는 엄선해서 고른 자신의 피아노만을 고집해 연주 및 녹음 장소에 힘들게 운반해 갔는데, 심지어 그의 특이한 연주 자세에 맞게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준 연주용 고무 의자 역시 들고 다녔다.

음식 또한 편식이 심했음은 물론이다. 사실 그는 거의 먹지 않았다. 고기는 입도 대지 않았고, 야채조차 먹지 않아 오직 과일 주스와 과자로 연명했다. 호텔의 생수를 믿지 못해, 이동할 때는 생수 두 병을 따로 챙겨야 했다. 때때로 그는 낚시꾼들에 잡힌 물고기들이 인간에게 먹히는 것을 마치 자신의 몸이 찢기는 것 마냥 고통스러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극도의 강박증은 엄살과 꾀병만 늘려주어, 정작 심각한 병이 나타났을 땐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으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50세라는 이른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클래식은 애드립을 많이 허용하지 않지만, 그만큼 연주자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를 들어보라.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맑은 스타카토의 음률이 당신의 마음을 휘감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굴드가 지향한 음악이다. 예상컨대, 그는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모든 속물적 외피를 벗어 던지고 음악 속으로 무한 회귀함으로써, 진정한 ‘안식’과 ‘영원’, 그리고 고립 속에서 비로소 말 걸어오는 ‘예술’과 만나지 않았나 싶다.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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