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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화)
무무무ㅁ..  
 
도가에서는 ‘도(道)’를 ‘무(無)’로 표현한다. 장자는 한발 더 나아가, 이를 단순히 ‘무’라는 용어로 담아낼 수 없다는 의미에서 ‘무유’라 즐겨 말했다. 그런데 왜 ‘도’가 ‘무’인가? 그것은 ‘완벽한 하나’, ‘큰 하나’와 같아서 논의될 수도, 인식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언어로 사유되는 순간, ‘밖이 없는 큰 하나’와 분리되어 버리지 않겠는가? ‘무무무무무…..’의 단계로 계속해서 소급해 들어가 스스로 완전한 자립을 이루는 형이상적 무 – 이것이 바로 ‘도’이다. 이러한 ‘도’를 진심으로 이해할 때 참 지혜를 얻으며, ‘도’와 하나가 되었을 때 참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도가의 가르침 속으로 들어가 볼까?


현대인은 학교에서 참으로 다양한 과목을 배우는데, 대학생이 되어서도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확보하고자 각종 자격증 공부에 매진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잠시 책을 내려놓고 생각해 보자.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알아가고 있는 것인가? 당신, ‘앎’에 대한 성찰을 해 본 적 있는가?

장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을 ‘가장 낮은 단계의 앎’으로 보았다.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단편적인 지식이란 ‘현상’만을 드러낼 뿐, 이를 일으키는 ‘초월적인 근원’에 대해선 결코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감각자료로 파악하는 이 세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 마음이란,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이와 달리 ‘고차원적 지혜’는 ‘무지(無知)의 지(知)’다. 이는 말해질 수 없는 ‘단 하나’이자, 스스로를 원인 삼는 ‘무무무무무…’에 대한 참 이해를 말한다. 외치(外馳, 외물을 좇는다)로는 획득할 수 없으며, 자타의 경계를 허문 무경(無竟)의 상태에서 자신마저도 잊고 ‘도’와 하나 될 때 누릴 수 있는 그러한 지혜이다.


장자는 <소요유(逍遙遊)>에서 인간의 상대적 행복과 절대적 행복, 두 가지를 논하였다. 전자는 자신의 타고난 본성[=덕(德)]을 충분히 발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각자에게 적합한 덕이 다르기에 그만큼 상대적이지만, 충분히 발휘했을 때 누구나 ‘균등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실천 가능한 행복이다. 그런데 이는 차이를 인정하고 획일성을 요구하지 않기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기는 하지만, 죽음, 병, 늙음 등 공간, 시간, 교육의 제약을 받으므로 온전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방해요소’를 넘어 영원한 행복에 다다를 수 있을까? 다음 일화를 보자.

장자의 부인이 죽자, 친구 혜시가 조문을 갔다. 그런데 그가 질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친구는 동고동락하던 부인이 죽었는데, 어찌 노래까지 부르느냐며 놀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라고 슬프지 않았겠는가? 허나, 본래 생명이 없었던 상태에서 기질이 생기고 형상을 이뤄 생명으로 탄생했다가, 춘하추동의 변화처럼 차례가 되어 다시 무로 돌아가게 된 것이거늘, 이제 나의 아내는 우주 만물 속에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데 꺼이꺼이 통곡하는 것이 ‘명(命)’에 통하지 않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네”


죽음이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생의 시작과 같다. 슬픔이나 분노 등의 정감을 이렇듯 ‘대자연의 섭리에 대한 이해’로 극복한 사람이 바로 도가식 성인이다. 장자는 세속을 떠나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유랑했던 열자에 대해, 그가 공명(公明) 등 사회의 일반적인 가치기준에서 벗어나 좀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해 갔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바람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불완전한 존재라고 지적했다. 성인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연과 하나 되어야 한다. 바람과 혼연일체 되어 스스로 육기의 변화를 부리고, 무궁한 우주에서 노닐 때, 그의 행복은 비로소 완전해진다. 이것이야 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못하는 것이 없는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의 차원이자, 마음을 속세 밖에 두고 무심히 명을 따르는 소요자재(逍遙自在)의 경지가 아닌가?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이 삶의 '이상'을 보여준다면, <제물론(齊物論)>은 그 '이상'을 따라가는 방법을 선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도가의 철학은 무용지용과 같아 실용적인 지식이나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삶의 가장 근본적인 지혜와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외물에 집착해 그것을 좇으면 자기 세계가 전부인 줄 아는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지만, 버리고 버려 모든 차별과 인위적인 허상, 내 안의 속박을 없애고 나면, 무차별의 ‘하나’, 즉 ‘도’만 남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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